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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덕 전 수원시장 등 4인,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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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투데이]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과 근대 농업발전에 한 획을 그은 고 우장춘 박사·허문회 박사·현신규 박사가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수원시는 23일 시청 대강당에서 ‘제2회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1939~2009), 세계적인 원예육종학자 우장춘 박사(1898~1959), ‘통일벼의 아버지’ 허문회 박사(1927~2010), 우리나라 최초 임학 분야 박사인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박사(1911~1986) 등 4명을 헌액했다. 이날 헌액으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12명으로 늘어났다.
 
수원시는 수원을 빛낸 개인·단체를 발굴해 기념하기 위해 2017년 ‘수원시 명예의 전당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첫 헌정 대상 후보자를 공모하고, 심의를 거쳐 2018년 8월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서지학자 이종학,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등 8명을 헌액한 바 있다.
 
이날 헌액식은 헌액 대상자 소개영상 상영, 염태영 시장의 기념사 등으로 진행됐다. 헌액대상자의 후손, 친지, 후학 등이 참석해 소감을 밝혔다.
 
헌액식 후 시청 본관 로비 벽면에 설치한 명예의 전당 제막 행사가 이어졌다.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자들의 사진과 간략한 생애·경력·업적 등이 새겨진 동판이 부착돼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념사에서 “오늘 헌액된 네 분은 남다른 지혜와 역량, 올곧은 사명감으로 수원시와 대한민국 발전의 밀알이 되신 분들”이라며 “내년 하반기 국립농업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근대농업에 한 획을 그으신 분들을 특별히 모시게 돼 뜻깊다”고 밝혔다.
 
이어 “수원의 자랑이신 분들을 기억하고, 빛내는 일은 후손의 마땅한 도리”라며 “이분들의 숭고한 뜻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과 성과들이 수원의 역사 문화 자산으로 쌓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스터 토일렛’, ‘행정의 달인’
민선 1·2기(1995~2002) 수원시장을 지내며 수원시를 ‘명품 화장실도시 수원’을 만드는 데 앞장선 심재덕 전 수원시장(1939~2009)은 그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했다.
 
심 전 시장은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화장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수원시장 재임 시절 ‘아름다운 화장실문화운동’을 전개하며 수원시 공중화장실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수원시장 재임 시절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화성행궁 복원, 수원천 생태하천 개발, 광교산 연중 개방, 2022년 월드컵 경기 유치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겨 ‘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다.
 
또 주민들과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기피 시설인 화장장(연화장), 쓰레기 소각장, 하수종말처리장 등을 건립해 수원시민의 생활기반을 마련해놓았다.
 
■세계적인 원예육종학자, 수원 여기산 기슭에 묻혀
우장춘 박사는 씨앗 개량에 일생을 바친 세계적인 원예육종학자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장춘은 일본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35년 세계 유전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종(種)의 합성’이라는 논문으로 도쿄제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복 이후 ‘우장춘 박사 환국 추진위’가 발족됐고, 1950년 3월 우장춘은 홀로 한국에 입국해 초대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배추와 무 종자 개량’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연구에 매진한 우장춘은 크고 아삭하며 병충해에 강한 신품종 무와 배추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57년에는 각종 채소 종자를 전국에 보급했고, 양배추·호박·오이·수박·토마토·가지·파·양파·고추 등 국민들이 많이 먹는 채소와 과일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우량 씨감자와 감귤을 보급한 것도 우장춘이었다.
 
1954년, 한국 먹거리를 불신했던 주한 미군은 정부에 “수경재배(水耕栽培)로 깨끗한 채소를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우장춘은 수원에 수경시설을 만들고 채소를 재배했는데, 비싼 가격에도 인기가 높았다.
 
1959년 위와 십이지장 궤양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가 좋지 않았고,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 병실에서 ‘대한민국 포장’을 받은 우장춘은 눈물을 흘리며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며 기뻐했다. 1959년 8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수원 여기산 기슭에 묻혔다.
 
■‘기적의 볍씨’ 통일벼 개발해 식량난 해결
허문회 박사는 기존 품종보다 수확량이 월등해 ‘기적의 볍씨’라고 불린 통일벼를 개발해 우리나라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은 한 세계적인 식물육종학자다.
 
허문회는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농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우리나라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고, 1964년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 특별연구원으로 위촉돼 벼 육종 기술을 연구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던 ‘자포니카’와 수확량이 많은 열대지방 벼 ‘인디카’의 교배를 계속해서 시도했고, ‘잡종불임’이 여러 대의 교잡을 거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 과정에서 ‘삼원교잡’(Bridge Cross)로 잡종의 불임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허문회는 추위에 강한 ‘유카라’ 품종과 수확량이 많은 인디카 품종의 삼원교잡을 시도해 1966년 3월 20여 개의 볍씨를 얻었다. 이 품종이 바로 ‘통일벼’다. 1974년부터 통일벼는 전국에서 재배됐고, 그해 쌀 생산은 처음으로 3000만 석을 돌파했다. 50원짜리 동전 뒷면에 통일벼 문양을 넣을 정도로 통일벼는 국민의 허기를 면해 준 귀중한 존재로 남았다.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의 ‘은수원사시나무’ 개발
현신규 박사는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산림녹화를 이뤄내는 데 크게 이바지한 임목육종(林木育種) 학자다.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제국대학 임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 홍릉 임업 시험장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후 규슈대학 대학원에 들어갔다.
 
1945년 귀국 후 서울대 농과대학 부교수로 발령받았고,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논문을 완성해 1949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임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산림유전연구소에서 활동하다가 1953년 귀국해 서울농대 임학과 과장을 맡았고, 그해 10월 ‘임목육종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인공교배로 얻은 리키테다소나무 종자를 전국 시험재배지에 심었다.
 
포플러 교잡종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의 교잡종이 경사지에서도 잘 크고, 사시나무보다 생장이 5배나 빠르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현신규는 새 수종을 ‘은수원사시나무’라고 명명했다. 은수원사시나무는 1967년부터 산림청 장려품종으로 지정돼 보급됐다.
 
1969년 서울에서 열린 제8회 UN 산하 FAO(식량농업기구) 아시아태평양 임업위원회 회의에서 현신규는 의장을 맡으며 세계적 임목육종학자로 인정받았다. 서울대 농대 교수로 32년 동안 제자를 길러내던 현신규는 1977년 정년퇴임 후 자신의 호를 딴 ‘향산 장학금’을 만들어 후학들의 학업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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