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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넣고 ‘정(情)’을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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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투데이]
  • 2017년 지속가능발전 과제로 최초 제안돼 발전한‘먹거리 거버넌스’
  • 인근 주민 누구나 먹거리 나누고, 홀몸 어르신의 끼니 제공 등 나눔 실천
  • 유통기한 확인 후 넣고, 1개씩만 가져가는 등 ‘공유’의 규칙 지켜야

 

“가족 같은 이웃들과 함께 먹거리를 나누는 냉장고입니다.”
 
수원시에는 특별한 냉장고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골목 어귀나 상점 앞에 설치된 ‘공유냉장고’다. 음식을 넣어놓는 사람도, 보관된 음식을 가져가는 사람도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수원시 공유냉장고는 현재 25개다. 공공의 예산 지원 없이 주민들의 의지와 관리, 참여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먹거리 거버넌스’다.
 
◇주민의 참여가 돌고 도는 공유냉장고
지난 3월 말, 권선구 세권로의 한 골목의 건물 1층 소담스러운 카페 앞 골목길에 대형 업소용 냉장고가 자리 잡았다. 수원시 20호 공유냉장고다. 도로변에서 공동주택 단지로 연결되는 통로 골목을 오가는 주민들 누구나 이 냉장고를 이용할 수 있다.
 
20호 공유냉장고에 주민들이 넣어 둔 음식은 또 다른 주민이 금세 가져간다. 덕분에 냉장고에 음식이 많이 남은 모습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어느 날은 사과 한 알, 고추장 한 병, 떡 한 봉지가 있고, 어떤 날은 택배기사가 저마다 다른 음료 10여 개를 냉장고에 넣고 가고, 또 다른 날은 엄마 손을 잡고 온 꼬마 주민이 냉장고에 상추를 넣어 둔다. ‘노지에서 재배했다’는 메모를 직접 적어두는 달필이 ‘참 잘 먹었읍니다’라는 꼬불꼬불 글씨로 돌아오기도 한다.
 
주민 모두가 공유하는 20호 냉장고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윤경 대표(53)다. 만 5년 넘게 한 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들이 늘었고, 단골손님들이 챙겨주는 음식을 함께 나눌 방법을 고민하다 알게 된 것이 공유냉장고였다. 그는 카페가 문을 닫는 날에도 공유냉장고는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자리를 만들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접이식 천막도 설치했다. 손님이 뜸한 시간을 틈타 들어온 먹거리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좋게 진열하거나 냉장고를 청소하는 일을 도맡는다.
 
이윤경 관리자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만이 아닌 이웃 누구나 정을 나누는 공유냉장고가 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의 끼니를 책임지는 공유냉장고
4호 공유냉장고는 ‘사랑의 한 끼’를 나누는 냉장고다. 2019년 2월 권선구 서둔동의 한 음식점 앞에 설치된 이후 인근 홀몸 어르신들이 밥 한 끼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침과 점심 메뉴로 백반을 파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곽상희 대표(49)가 반찬이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하게 만들어 장사한 뒤 남은 반찬과 찌개류를 소분해 문 앞 4호 공유냉장고에 넣어둔다. 공유냉장고에 반찬이 가득 차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맞춰 홀몸 어르신들이 찾아와 기다리는 덕분에 냉장고 앞은 때 아닌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매일 반찬을 가져가는 동네 어르신들은 운영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한다. 소일거리 삼아 뜯은 쑥을 한 움큼 가져다주기도 하고, 더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시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이 키우기 힘들어진 애정 어린 화분을 식당 앞으로 옮겨다 놓은 덕분에 식당 앞은 화원처럼 많은 화분이 자라고 있다.
 
4호 공유냉장고에서 반찬을 가져가던 이재순 할머니(82)는 “혼자 지내며 밥은 어떻게든 해도 반찬을 하기는 너무 힘든데 공유냉장고 덕분에 끼니 챙기기가 훨씬 수월해져 고마운 마음”이라며 운영자의 손을 두드렸다.
 
이에 운영자인 곽상희 대표는 “동네 어르신들이 반찬을 매일 바꿔서 드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르신들이 더 예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공유냉장고, 지속가능한 수원을 만든다
공유냉장고의 시작은 2017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민·관이 머리를 맞댔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먹거리 기본권 보장, 공동체 복원 등을 위한 공유냉장고 프로젝트가 제안됐다.
 
프로젝트를 위해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수원시자원봉사센터, 수원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이 의견을 수렴해 2018년 1월 고색동 생태교통문화협동조합 커피페이지 1호점에 수원시 최초의 공유냉장고가 설치됐다.
 
이후 구시가지와 다세대주택, 학교 등지로 늘어난 공유냉장고는 2021년 6월 현재 25개가 됐다. 공유냉장고가 활성화되면서 운영자들끼리 온라인 채팅방을 만들어 매일 공유냉장고 운영 현황과 냉장고 관리에 관한 일화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공유냉장고는 지난해 환경부가 주최하고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관한 제22회 지속가능발전대상 공모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실천한 우수사례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최근 냉장고에는 더 많은 ‘참여’가 담기고 있다.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주기적인 후원을 하거나, 인근 대형마트에서 냉장고에 정기적인 후원을 하기도 한다. 탑동시민농장 등에서 농작업 봉사활동을 하는 ‘도시농업 시민봉사단’은 수확한 농산물(감자·김장 채소·포도·사과 등)을 공유냉장고를 통해 시민들과 나눌 계획이다.
 
◇규칙을 지켜 마음껏 이용하세요
현재 공유냉장고는 현재 25곳에 설치돼 있다.
 
장안구에는 ▲8호점-광교산로509번길 13 수원로컬푸드직매장 ▲9호점-창훈로 69 진달래삼겹살 ▲14호점-장안로89번길 47 정자시장공영주차장 ▲16호점-파장로46번길 3 삼거리부동산 ▲23호점-파장천로 52 얼씨구절씨구 ▲24호점-팔달로 313 황실 ▲26호점-율전로107번길 27 CU율전스카이점 등 7곳이 있다.
 
권선구에는 ▲4호점-서호동로26번길 12 우리샘갈비 ▲6호점-권선구 평동 오목천로 15 상송마을주공아파트 ▲10호점-상탑로 120 밥이랑면이랑 ▲15호점-세권로 20 맛있는수다 ▲17호점-동수원로146번길 149 용스카매직 ▲19호점-구운로64번길 24 아이세움공부방 ▲20호점-세권로 32 센트럴프라자 욜로32 등 7곳이 운영 중이다.
 
팔달구에서는 ▲3호점-창룡대로210번길 13 우만종합사회복지관 ▲5호점-수원천로392번길 44-60 삼일공업고등학교 ▲7호점-권선로 733 401호 경기수원지역자활센터 ▲11호점-중부대로 189 꽃미경네삼겹포차 ▲12호점-고화로 70 고래등24시마을공유소 ▲21호점-창룡문로 34 지동창룡마을창작센터 ▲22호점-갓매산로 21 우리낙지한마당 ▲25호점 수성로157번길 27-4 화서염소탕 등 8곳이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영통구는 현재 ▲2호점-매탄로168번길 2 바른생협매탄점 ▲13호점-광교중앙로 250 저스트콤마 ▲18호점-광교호수로152번길 23 등 3곳의 공유냉장고가 있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만큼 음식물을 넣고 가져가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채소 및 식재료, 반찬류, 통조림 등 가공품, 음료수, 반조리식품, 냉동식품 등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기한 잔여일 2일 이내의 음식물이나 주류, 약품류, 건강보조식품, 불량식품 등은 공유할 수 없다. 또 다량의 음식물이 있을 경우 한 사람이 한 개의 음식물을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음식물을 담아 둔 유리병 또는 재활용기는 반납해야 하고,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사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공유냉장고 사업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신뢰를 기반으로 추진한 진정한 거버넌스 사례”라며 “주민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이웃사랑 실현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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